평론

제목[시창작실기론]저. 송수권. '디지털 시대의 노마드와 삶' 나의 아바다/신지혜 시2019-07-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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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 실기론/송수권 (시인.교수)

"디지털 시대의 노마드의 삶"- 중에서


 

     한 편의 완결된 시라 할지라도 시적 경지가 없고 발테 벤야민이 주장한 '아우라'가 없을 때 나는 그  시를 믿을 수 없다.

     또한 전통정서를 벗어나 새로운 유목의 피를 생산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종이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흩어지는 시가 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IT(정보기술), BT(생명기술), NT(나노기술)로의 과학 발전에 힘입어 우리 삶의 질과 내용이 새로워진다 할지라도  '클릭하므로 존재한다'는 그 말에는 쉽게 공감할 수 없다. 세계화란 이름을 빌려 국경도, 민족의 개념도 무너지고, 장르파괴. 내용파괴. 형식파괴라는 혼성모방 시대에 저출산. 저인구. 노령화. 극빈. 실업. 인간성 살실 등 우리 삶의 정서와 총체적 정체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의 시는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다.

 

 문득문득 나는 사라진다. 나는 저편의 나와 자주 교환된다. 왕래한다. 스민다. 녹는다. 내 생각이 허공에서 딱딱한 덩어리로 뭉쳐지거나 크림 스프처럼 주루룩 흘러내릴 때 있다. 나는 소리없이 내몸 거두어 휘발할 때 있다. 사나운 바람 이랴! 이랴! 채찍질하며 거울 속 사막을 혼자 마구 치달릴 때 있다. 균열된 공중 틈새로 내 사유의 발바닥이 늪처럼 빠질 때 있다. 꿈의 벼랑 끝에서 추락할 때 현실의 그물망에 걸려 내 날개 찢겨질 때 있다. 길을 둘둘 감고 있는 늙은 바오밥나무야. 내가 너를 여러 번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때 있다. 천천히 공중 선회하는 구름 독수리야, 내가 너로 살았고 입었고 벗었다는 생각이 들 때 있다. 사상거처도 없이, 밤과 낮에 무슨 연고도 없이, 무연히 정박할 때 있다. 내가 수천 아바타로 번쩍번쩍 몸 바꿔 환생할 때 있다

                                                                                                  -신지혜,<나의 아바다><현대시학. 2006.3월호>전문

 

    위의 시는 '클릭하므로 존재한다(이원)'는 IT 상상력으로 써진 백미편의 시다. 아바타란 사이버 공간에서 사이버 머니를 산 다음 자기 동일시 현상으로 인형에 옷을 입히거나 머리 쪽 짓기 등의 인형놀이을 말한다. 이는 곧 자기 분신으로 고독을 응시하며 자기 정체성 (selt-identify)을 회복하기 위한 게임으로서 인간성 회복이 이 시대에 얼마나 고독한 것인가를 묻고 질문한다. 그러므로 위의 시는 현대시 쓰기란 '대답하지 말고 질문하라'는 명제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1930년대의 모더니즘 시단에서 그 예를 찾아보면 정지용과 이상을 비교해볼 수 있다. 정지용은 모더니스트로 출발하지만<까페 프란스>가 아닌 1927년에 발표된 <향수>와 개체험을 삶과 죽음으로 뒤집는 시<유리창>, 또는 국토 생체험을 쓴 <백록담>등 전통 서정시로 살아남는다. 이에 반해 이상은 '이상은 이상이고, 이상은 이상이 아니다'라고 하던 그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 정선될 만한 시가 없고 가락으로 세울 만한 애송시도 없다. 다시 말하면 한 시대의 흐름에선 문제 시인으로 기억되지만 고전에 닿을 수 있는 시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 현대시 백 년 사를 정리해서 올해 발간한 ,<한국문학선집>(문학과 지성사)을 보면 관념시나 이미지로 시를 썼던 시인들 대신 서정성이 뛰어났던 신석정, 박성룡의 시가 다시 올라와 있음을 본다. 다른 문학 선집들에서 곧잘 빠졌던 시인들이다. 이는 은연중에 작용한 본질적인 서정의 힘이라 여겨진다.

   서정의 육화란 생체험과 주술성을 말한다. 생체험(개체험)이란 삶과 죽음을 뒤집어놓는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자기존재 확인이며 주술성은 언어의 신성한 가락을 낳는다. 이것이 3합론이며 3합론이 시적 아우라를 형성하는 것이다. 최상의 시는 새로운 삶의 내용이 되는 정신을 그 주술성에 실어내는 언어예술이다. 전통 서정시의 발라드로 가든, 새로운 서정의 록핀으로 가든 이 요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무릇 시란 겨레의 면면한 정조와 숨결 그리고 가락을 흔들어야 할 것이다. 가락은 이미지로 남는 시가 아니라 민족정서와 역동적인 힘으로 남는다. 이것이 시에서 말하는 생취요 촉기다. 대개 '문제 시'는 혀가 빨라지고  '좋은 시'는 혀를 감추고 그 혀를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말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휘늘어진 가락으로 말한다. 이 가락 속에 아픔이 실리고 삶의 극기와 고통이 함축된 은유체계가 형성된다. 이것이 명시로 남고 고전으로 남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언어영역에서 출제되는 시들은 이런 시들이다.



<시평> 2008.여름호> 2008.5.10. 원광대 특강

<시창작 실기론>중에서.송수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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