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제목공기 한 줌(신지혜 시)-THE NEW POETIC WAVES(미주시인 2005년 창간호) 이 계절의 시,2019-07-1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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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1 04:28 | HIT : 3,442 | VOTE : 420

 

공기 한 줌(신지혜 詩)-THE NEW POETIC WAVES(미주시인 2005년 창간호)

                         이 계절의 시:"시를 다시 읽는다"/조옥동(시인)

                                                                         


[고대와 지금, 나와 우주를 잇는 겸허(謙虛)의 서정 ]


공기 한 줌


신지혜


새벽 산책길,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때마다 공기 한줌이 빨려들었다 빨려나간다
삼천대천 우주가 내 코끝으로 들락날락한다

나를 빠져나간 공기가 다시 네 속으로 빨려든다
너를 빠져나온 공기가 다시 내 속으로 빨려든다

내가 빨아들인 이 공기도
지금은 아득히 사라진 古代, 그 어느 死者의
내부를 탱탱이 살찌웠던 그 물빛
숨결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풀무를 돌리며
차가운 눈물을 따뜻이 데워냈을 것이다

저 길가에, 푸른 화두 주렁주렁 매달고 서있는
상수리나무들과, 희미한 종소리로
새벽을 틔워내던 초롱꽃들. 위태로운
허공 절벽을 시시때때로 박차 오르던 이름 모를 새들과
나 한 숨결 고루 나누면서도
가없는 수평의 겸허를 깨닫지 못했다

새벽 산책길,
불현듯 내 코끝이 찡해진다

시 전문지 2004년 계간 '시안' 가을호에 실린 최근 작품이다.



<시작노트>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신의 축복인가. 무심하게 들이키는 공기가 우리를 키운다. 얼마나 눈물겹도록 뜨거운 내 양식인가. 억겁을 흘러오며 유일하게 산 자들만 공유하며 마실 수 있는 대자연의 무한한 공기에 감사한다. 두루 두루 한 공기 안에서 억겁이래 나누어 마시는 공기, 그 안에선 모든 사물들의 높고 낮음도 무화된다. 균일한 평등과 수평을 이룬다. 공생, 공용, 공존한다. 우주적 존재일 뿐인 내 자신을 조용히 반추해 본다.

<시인의 약력> 신지혜
. 서울 출생.
.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2000) 수상
.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2001), [현대시학](2002)으로 등단.
. 현재 뉴욕 미주중앙일보에 「시와의 대화」집필중
. 한국문인협회, 재미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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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사물을 조각하는 사람이다. 시간과 공간과 사상, 즉 언어의 삼차원적 예술품을 만드는 작가이다. 형체도 없는 하나의 조각품을 비유적 표현 방법으로
독자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고 만져 지듯 사물이나 현상을 언어를 통해 감상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해야 한다.
신지혜 시인이 만드는 언어의 조각품이 색다르고 눈 여겨 보이게 하는 데는 그의 손끝에서 만져지는 언어라는 자료에 남이 발견치 못한 생동감을 혼합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편에서 언어와 언어의 거리는 촘촘하고 탱탱하여 퉁겨 오르는 힘이 있다.
꼬깃꼬깃한 시간의 주름살을 팽팽히 다려놓는다('물방울 하나가 매달려 있다' 에서). 구겨 보이는 곳이 없다. 본인 스스로도 "늘 신선한 사물과의 만남과, 따뜻한 시선의 조응으로서 시간의 세밀한 무늬결을 더듬어, 맑고 경쾌한 울림으로 연주하고 싶다."고 한 말과 일치한다.
이미 남이 사용한 똑 같은 말을 이 시인은 다른 위치에 다른 각도로 설치하므로 새롭게 한다. 그의 언어는 어둠 속에 넣어도 빛이 난다. 고정 관념을 명쾌하게 깨뜨린다. 말이 쉽지 우리의 생각과 이성과 육체까지도 일상에서의 일탈을 꾀하려면 즉 하나의 변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쉼 없는 몸부림으로 앓음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의 연줄은 탱탱하여 높이 연(鳶)을 유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인간이 하나의 악기라면 시는 이 악기가 가장 잘 조율되었을 때 낼 수 있는 최상의 소리이다.

새벽 산책 길
크게 심호흡을 한다


손에 만져지지도 보이지도 않아 없는 듯 하다가 가장 가까운 곳에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공기 한 줌을 매체로 시심의 확산이 시작된다. 공기 한 바가지 또는 공기 한 그릇도 아닌 공기 한 줌을 통하여 우주를 생각하고 우주와의 거리를 자신의 몸 속에 빨아들인다.
무미 무색 무취의 공기는 역시 무색 무미 무취인 물과 함께 생물이 존재하게 하는 절대요소이다. 무형의 물질, 크기와 모양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담겨지고 담을 수 있는 물질, 하나는 기체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액체상태이다. 지구상에 생물이 존재하게 하는 필수요소이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라서 우리는 그들을 의식하거나 특별히 감각하려 하지 않는다.

새벽 산책 길, 신선한 공기를 크게 심호흡을 해본 데서부터 시인은 시를 조각한다. 새벽이란 스스로 신선한 단어를 어두로 상쾌한 뉘앙스를 설치한다. 현대는 식수마저 오염되어 그 흔한 물을 맘대로 못 마시고 깨끗한 물을 자동차 기름보다 훨씬 비싸게 사서 마시고 있다. 미래에는 공기조차 비싸게 사서 마치 호흡 곤란 환자가 산소 통을 매달고 다니 듯 공기통을 들고 다니며 호흡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 지, 지구는 앓고 있다. 먼 알래스카나
아마존 지방에서 채취한 공기는 특등품으로 판매될 가능성도 있고, 물 전기분해 장치를 들고 다니며 생성되는 산소를 유도하는 줄을 사람마다 코에 끼고 다닐 가능성도 있다는 가정이 이미 시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면 갈수록,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한줌의 공기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시인은 공기 한줌의 신선도를 트집잡기보다는 호흡하고 살아있다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조각해 보인다. 화자는 오랜 투병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확인하는 목숨처럼 시를 써 온 (본인의 말) 시인이다. 아니 생명이 있기에 시를 쓸 수 있는 삶 곧 호흡하고 있음의 축복에 감사하고 있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죽음의 방(房) 문설주를 짚어 본 사람만이 더욱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살아있기에 아니 살기 위해 감당하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뛰어넘어 현재 살아서 생명이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 즉 호흡하는 순간 순간마다 그 매체인 공기가 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생명을 달고 있는 모두에게 얼마나 눈물겹도록 뜨거운 양식인가 말이다.

그때마다 공기 한줌이 빨려들었다 빨려나간다
삼천대천 우주가 내 코끝으로 들락날락한다

나와 내 코끝으로 들락날락하는 공기 한줌과의 사이는 무엇인가. 삼천 대천은 수천 광년을 달려도 아직껏 도달하지 못한 무한한 세계인 이 우주와 나와의 관계를 시인은 공기 한줌을 통하여 명쾌하게 규정짓고 있다. 아니 그 경계를 허물고 있다. 코끝에 들락날락하는 우주, 인식의 확산을 통한 만남은 허허한 공허를 메꾸고 오히려 따뜻한 온기로 채운다. 시인은 언어의 극소와 극대의 만남으로 새로운 조화의 묘를 느끼게 한다. 코 끝, 가장 미미한 곳과 우주의 만남은 언어의 조각예술에서 극소화와 극대화를 통해서 가능해졌다. 코끝에서 만나는 우주, 내 몸 속으로 들락날락하는 거대한 우주를 상상만 해도 신선하다. 내 입을 통하여 나간 공기의 떨림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거대한 산을 울려 찌렁찌렁 산울림을 만드는 메아리도 신기한데 하물며 우주적 힘에 코끝을 갖다 대 보는 일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인의 교만이나 허황이 아니다. 우주 속의 지구, 지구 속의 작은 모래알 같은 나를 바라보는 겸허일 뿐이다.

내가 빨아들인 공기도/지금은 아득히 사라진 古代, 어느 死者의/내부를 탱탱이 살찌웠던 그 물빛/숨결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풀무를 돌리며/차가운 눈물을 따뜻이 데워냈을 것이다
저 길가에, 푸른 화두 주렁주렁 매달고 서있는/상수리나무들과, 희미한 종소리로/
새벽을 틔워내던 초롱꽃들. 위태로운/ 허공 절벽을 시시때때로 박차오르던 이름 모를 새들과/나 한 숨결 고루 나누면서도 가없는 수평의 겸허를 깨닫지 못했다

아득히 사라진 것들 죽은 자에겐 필요 없게 되었어도 그들이 살아있던 고대에 그들의 핏줄 속에 함께 순환하며 핏줄을 탱탱이 살찌웠던 공기. 억겁이래 한 공기 안에서 나누어 마시는 공기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은 동질성,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등시성을 설파하고 있다. 내가 사는 현대와 사라진 고대 즉 시간을 초월하는 역사적 이해를 통하여 종적이해를 설정하고 있다.

새의 호흡과 사람의 호흡이 얼마나 다른가. 새보다 몇 백 배 작은 하루살이의 호흡을 생각해 보면 나 한 숨결 과 그들의 숨결이 비록 크고 작은 차이는 있다해도 똑같은 동질의 공기를 호흡한다는 공통 분모를 쉽게 찾아낸다. 생명의 근본을, 생명의 존귀함 즉 생명의 고귀함을 나무와 꽃, 새와 시인을 수평으로 나열함으로서 균일한 평등, 수평의 평면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작품 속에서 공생과 공용과 공존의 의식을 말하고 싶어한다. 계급이나 나이, 신분과 사는 장소, 생물의 종류에 구별 없이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공기 속에서 공감각을 통한 동질성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한 줌의 공기를 매개로 공생, 공용, 공존의 인식을 확산함으로 공간상호성 즉 횡적 이해를 설정하고 서슴없는 그 시심의 확산은 생명체의 본질적 이해에 닿는다. 원형적 상징을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서 우주적 존재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부각시키고 시인 자신을 조용히 반추해보는 자기 성찰이 깊다.
작품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이 시인이 갖고 있는 시공을 자유로 드나드는 통찰력과 감성의 우수함은 깊은 내면에 감춰둔 내밀한 겸손의 자궁 속에서 배태되고 계속 움이 터서 성숙되어 감을 알 수 있다.




THE NEW POETIC WAVES(미주시인 2005년 창간호).<조옥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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