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5 07:09 | HIT : 3,741
빵 한 덩이
신지혜
오븐에 갓 구운 호밀빵을 나이프로 자르다 보았다
이렇게 수많은 방, 천둥 번개 살다 간 방,
누가 여기서 나비 알을 까고 나갔는가.
알집같은 무덤이 수백 채.
오븐 속에서
뜨거운 입김에 부풀어 터지면서
나가떨어진 고요의 이 빈집들, 참 방방이 환하구나
폭신폭신 천만개 구멍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그 개미떼 같은 사람들 다 어딜 가고
빵 한 덩이 이리 둥글고 환한 空을
수백 채 껴안았는가
노릇하게 구워진 빵 조각에 버터 듬뿍 발라
내가 空을 목구멍 미어지게 삼킨다
저편 노을에 밀리는 푸른 밀싹들 다투어 쓰러지고
천의 공동묘지 하얗게 버즘처럼 일어선다
산다는 것,
화엄의 살내음 모락모락 피워올리는 빵 한 덩이에
온 저녁 허기가 다 따뜻해진다
-2008년 『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