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7 01:10 | HIT : 3,318
물의 얼굴
신지혜
물의 얼굴을 보았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목구비를 만지려고 했더니 그만 사라졌어요 아니, 순식간에 날아갔다고 푸드득거리는 날갯짓소리 들었다고
세면대에 수돗물을 틀어놓거나 샤워기 속에서 쏟아져 내리는 이 제멋대로 자유자재한 모습의 존재가 다른 별에는 없는데 유독 지구표면에만 젤리처럼 악착같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분말처럼 부서지지 않고 혼자인 듯 여럿이 부드러운 힘으로 사람을 키우고 들꽃을 빚고
매초, 삶과 죽음의 궤적을 그리며 몸 안 심산유곡 휘돌아 치는 물소리, 하지만 물의 힘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산목숨 물주머니 아닌 것 하나도 없어 무릇 인연 스칠 때마다 서늘한 숨꽃 툭, 틔워준다 한다 단 한번도 그 변화무쌍한 천의 얼굴, 바로 본적 없으나 그 품이 넉넉하다 한다
-계간[문학과 창작] 가을호-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