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고니 발을 보다
고형렬(1954~)
고니들의 기다란 가느다란 발이 논둑을 넘어간다
넘어가면서 마른
풀 하나 건들지 않는다
고니 한 식구들이 눈발 위에서 걸어가다가 문득 멈추어 섰다
고니들의 길고 가느다란 발은 정말 까맣고
윤기 나는 나뭇가지 같다
(그들의 다리가 들어올려질 때는 작은 발가락들이 일제히 오므라졌다
다시 내디딜 땐 그 세 발가락이 활짝 펴졌다)
아, 아무 것도 들어올리지 않는!
반짝이는
그 사이로 눈발이 영화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내게는 그들의 집은
저 눈 내리는 하늘 속인 것 같았다.
끝없이 눈들이 붐비는 하늘 속
고니들은 눈송이도 건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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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처럼 거대한 묘법이 또 있는가. 눈 속의 고니들! 더욱이 그 눈부신 발이란? '아, 아무 것도 들어올리지 않는!' 고니들의 한 경지를 보라. '눈송이도 건들지 않는다' 한다. 저들의 신비로운 자태와 경이로움, 그리고 유유자적한 순백의 고니들의 모습에 반하게 된다.
고형렬 시인은 강원도 속초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청봉 수박밭' '성에꽃 눈부처''김포 운호가든 집에서'밤 미시령'등 다수가 있으며, 지훈상, 일연문학상, 백석문학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신문 발행일>2008.2.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