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신문』
[詩 가 있는 세상]
건망증
이시영(1949~)
송기원이 '실천문학' 주간으로 정신없을 때 그는 멀
쩡한 제 명함에다 문구 형님 집 전화번호를 찍어 다녔
다. 덕분에 문구 형님 집에선 밤이나 낮이나 걸려오는
그놈의"송기원씨 좀 바꿔주세요"라는 천하 술꾼들의
전화질 때문에 생몸살을 앓았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
보다 더 심한 경우가 당시 중앙일보 문학 담당 임재걸
씨였다. 그는 수시로 그런 송기원에게 전화를 걸어 "거
기 임재걸씨 있습니까?"라고 물어 그때마다 그를 깜짝
깜짝 놀라게 했다며 그에 비하면 자기는 정말 아무것
도 아니라고 송기원은 펄쩍 뛰면서 얘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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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의 완만한 삶을 위하여, 건망증을 주셨다 한다. 슬프고 괴로운 기억들마저 만약 영구히 잊지 못한다면 망각해야 할 기억의 홍수로 인해, 인간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으리라. 적당한 건망증이야말로 때때로 치유제일 때도 있다. 이 유쾌한 싯구절로 인해, 더없이 환해지는 가을날이다.
이시영 시인은 전남 구례 출생.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 데뷔. 시집으로[만월][바람 속으로][길은 멀다 친구여][이슬 맺힌 노래][무늬][사이][조용한 푸른 하늘][은빛 호각][바다호수]등, 정지용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지훈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신문발행일.OCT. 19.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