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23 00:00 | HIT : 2,832 | VOTE : 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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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교단] 밑줄 [2009-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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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신지혜
바지랑대 높이 굵은 밑줄 한 줄 그렸습니다 얹힌 게 아무것도 없는 밑줄이 제 혼자 춤춥니다
이따금씩 휘휘 구름의 말씀뿐인데, 우르르 천둥 번개 호통뿐인데, 웬걸? 소중한 말씀들은 다 어딜 가고
밑줄만 달랑 남아 본시부터 비어 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
조용하고 엄숙한 말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지요
잘 삭힌 고요,
空의 말씀이 형용할 수 없이 깊어, 밑줄 가늘게 한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
‘몸 없는 바람처럼/마음 없는 구름처럼/훨훨 떨쳐버리고 가라/가거라//허드슨 강가에서/신지혜’ 신지혜의 시집 [自序]입니다. 미주 중앙일보와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신지혜 시인의 시의 장점은 공존에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 ‘깊이와 넓이’ ‘일상과 이상’ ‘세심한 관찰과 대담한 표현’ 등이 공존하는 시들은 때로는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때로는 가슴 깊이 젖어드는 감동을 전해줍니다. 시인은 말씀마저 비워 낸 파란 하늘 배경을 자처하고 있는 허공(빌空자) 아래 밑줄 한 줄 주욱 거침없이 그었습니다. 빨래줄 한 줄이 내뿜는 설법은 ‘비어 있는 것은 언젠가 가득 차게 마련’ 이라고 엄숙하게 그리고 흔적조차 남기지 말고 겸손해지라며 한 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
시배달 정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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